'함흥차사(咸興差使)'의 유래 소개글입니다.
일반적으로 심부름 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고 소식조차 없을 때 우리는 흔히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함흥차사(咸興差使)는 '함흥(咸興)'과 '차사(差使)'라는 단어가 합해진 말입니다.
'함흥(咸興)'은 현재 함경남도에 있는 지역명이고, '차사(差使)'는 임금이 중요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임시로 뽑은 벼슬을 뜻합니다.
즉 '함흥차사(咸興差使)'의 원래 뜻은 '임금이 처리할 일이 있어 함흥으로 심부름을 보낸 사람'인데, 왜 오늘날 심부름 보낸 사람이 소식이 없을 때 사용하게 된 것일까요?
'함흥차사(咸興差使)'의 유래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그의 다섯 번째 아들인 태종 이방원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에게는 많은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이방원'은 '이성계'의 첫째 부인 '신의왕후'의 다섯 번째 아들로 조선 건국시 공이 가장 컸습니다.
'이방원'은 자신이 세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의 기대와 달리 세자로 책봉된 사람은 이성계의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의 둘째 아들 '이방석'이었습니다.
이방석은 이때 11살이었는데 이에 화가 난 이방원은 다른 형제들과 함께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방석'은 물론 반대파들을 모두 숙청했습니다.
이후 이방원은 자신의 둘째 형을 세자에 올렸다가 훗날 조선의 세 번째 왕인 태종이 되었습니다.
형제의 난을 일으키며 자신의 아들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모습에 분노한 태조 이성계는 자신의 고향인 '함흥'으로 가서 은둔생활을 했습니다.
왕위에 오른 태종 이방원은 아버지를 궁궐로 모셔오려고 함흥으로 신하를 보냈으나, 태조 이성계는 이를 거부하고 계속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더해 이방원에 분노했던 이성계는 함흥으로 심부름을 온 차사들을 활로 쏴서 죽였습니다.
함흥에 간 차사들을 태조 이성계가 계속 활로 쏴서 죽이자 신하들은 아무도 함흥에 가려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박순'이 자원해 태조에게 가서 부자지간의 정을 언급하며 이성계를 설득하고자 했지만 실패했고, 이성계는 박순을 그냥 보내주었습니다.
박순은 몸이 안 좋아 강을 건너기 전 함흥에서 하루를 더 쉬었는데 이 사실을 몰랐던 이성계는 박순이 '강을 건넜다면 쫓지 말아라' 명했고, 결국 박순은 죽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함흥차사(咸興差使)'는 심부름을 가서 돌아오지 않거나 연락이 끊긴 경우 쓰는 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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