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시대의 다국적 기업, '푸거' 가문 소개합니다.
푸거 가문은 중세 말기 독일 아우크스브르크의 가문입니다.
'요한 푸거'는1930년 무렵 아우크스부르크에 처음 상점을 열었고, 대를 이어 그의 손자인 '야콥 푸거'는 대부호로 불리었습니다.
야콥 푸거는 이자로 이득을 보는 고리대금업과 금속 거래를 주로 했는데, 푸거 가문이 운영하는 기업을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기업으로 만들었습니다.'
대부호로 불리는 야콥 푸거는 1500년에 구리를 독점 수출하는 무역회사를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중앙 유럽, 네덜란드, 이탈리아에 오늘날의 은행 역할을 하는 기관을 설립했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 황제 막시밀리안 1세와 지그문트 대공에게 많은 자금을 빌려주었고, 그 대가로 철광석이나 땅, 상업 활동 시 특혜를 받았습니다.
특히 티롤 슈바츠에 소재한 유럽 최대의 은광 채광권을 확보하면서 많은 이익을 남겼습니다.
또한 야콥 푸거는 교황청 재정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고리대금업에 대한 금지 조치를 해제시켜 은행업이 크게 발전하게 했습니다.
15세기 말에 농산물 공급량이 부족해져 식료품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푸거 가문과 같은 대상인들은 왕실에 돈을 빌려주는 일에 큰 관심을 보입니다.
막대한 돈이 왕가의 사치품 구입과 군대 운영비에 탕진되었고, 이는 국가의 경제 성장 속도를 느리게 만들었습니다.
푸거 기업은 '카를 5세'의 황제 선출과 그가 거느리는 군대를 재정적으로 지원했고, 네덜란드와 베네치아에 구리를 수출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과 다른 국가에 푸거 기업의 채권이 계속해서 축적되면서 결국 기업의 쇠퇴를 불러왔습니다.
또한 면죄부 판매를 상업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종교개혁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생산 및 상업활동에 투자하는 대신 토지 매입과 권력을 보호해주고, 그 대가로 이득을 취하였던 푸거 기업은 봉건 상업 체제의 소멸과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당시 푸거 가문의 재산을 현재 가치로 환산시 빌 게이츠 재산은 2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니 그의 재산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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